지난 주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둘레길 10코스 (위태마을 - 하동호) 구간이예요
새벽 집에서 출발했지만 위태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코스 안내책자에는 5시간여 걸린다고 했지만
보통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정도는 단축되던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사진도 담으며 걷기 시작했어요
아참! 위태마을로 들어가는 택시기사분은 차분하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그래도 위험하니 걸음을 좀 빨리하는게 나을거 같다고 하셨어요
내리는 데 밤 한봉지를 주시며 걸으면서 맛이나 보라고 하셨어요
참 친절하신 분이었어요
좋은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가을 분위기 제대로 나죠
위태마을에서 시작하여 지네재를 지나 오율마을 그리고 궁항마을로 들어섰어요
예상했던거 보다 조금은 힘든 코스였어요
궁항마을을 벗어나려는데 어느 순간 진돗개 한마리가 제 옆에 스윽...
걷고 있는거예요
평소 견공들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심장이 날라가는줄 알았어요
물면 어쩌지 계속 따라오면 어쩌지 걱정걱정을 하다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죠
"여기서 더 가면 위험하니까 집으로 가자~"
"착하지?"(속으론 약간 쫄아서..^^;;)
그런데 이 녀석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앞으로 먼저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하는거예요
그러다 제가 늦어지면 저를 바라보며 기다리다
조금 거리가 좁아진다 생각되면 다시 앞으로 길을 찾아 나서고..
바로 이 녀석이예요
녀석 보면 볼수록 잘생겼더라고요
걷다가 이상한 동물이 보이면 막 따라가고 종종 숲속으로 사라진다 싶으면
어느새 푸드득 새가 날아오르고
그러다가도 제 앞으로 스윽 앞서가며 저를 에스코트 해주고 있더라고요
아직은 단풍철이 아니어서인지 둘레길에는 인적이 없었어요
무덤가를 지날때는 뒷골이 시원해지기도 했었는데
무섭게 느껴지던 이 녀석이 어느새 의지가 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도 길을 잃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길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해도 별 반응없이 앞서가며 제가 가야하는 코스를 안내해주더군요
참 신기한 녀석이었어요
앞으로 가면서 종종 소변 대변등을 보며 영역을 표시해두는것을 보고
맘속으로
"다행이다 녀석!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겠구나!"
안심도 되고 참 믿음직스러운 녀석이었어요
앞서가면서 계속 무엇엔가 관심을 보이면서도 제 주변에서 멀어지지 않았어요
잠시 쉬어가려 벤치에 앉아 간식과 주스를 주었는데
관심이 전혀 없더군요
혼자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마시고
숲속에서 무언가 먹고하더라고요
녀석 배고플거 같은데...
어느새 전 녀석에게
"같이가자~~ 혼자가니까 심심하잖아~~"
하며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점잖은 녀석! 한번도 답을 안주더군요..^^
짖지도 않고 조용히 앞서가며 길만 인도하는..
녀석과 즐겁게 걷다보니 하동호에 도착했어요
나본마을
그런데 시간이 더 이상 걷기엔 애매하고 차편도 끊기고
녀석도 더 이상 가면 안될거 같고 해서
숙소를 알아보는데
마침 운동을 하던 선생님께서 민박집을 소개시켜주신다고 하십니다
녀석은 멈춰서서 숙소를 찾는 저를 꽤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내내 앞서가던 녀석이 제 주위를 맴돌며
저쪽 둘레길쪽으로 더 걸어가자는 눈빛을 보내더라고요
" 더 가면 너 집에서 너무 멀어져서 안돼. 여기서 오늘 묵고
내일 집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이런! 민박집 주인께서 진주에서 열리는 유등축제 구경을 가셨는지
연락도 안되고 큰일났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추워지기도 하고 녀석도 저도 배도 고프고요..
아까 그 선생님께서 가까이에 동갑인 친구가 있으니
친구집 부부와 하루 묵고 가라며 친절하게 저를 안내해주십니다
인심좋게 생기신 어르신들께서
얼른 들어와서 저녁도 먹고 편히 쉬다 가라하셔서
실례를 무릎쓰고 어르신들댁으로 들어가니
녀석이 걸리고..
어르신들께
"죄송하지만 저 녀석이 저 너머 마을에서부터 저를 에스코트 해주었어요
배가 고플거같은데 밥좀 주시겠어요"
부탁을 드리니 알았으니 들어와서 편히 쉬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녀석 제가 집으로 들어와서 계속 내다보니 무척 불안한 눈빛을 합니다
저도 덩달아 불안불안..
저녁을 준비하시는 어르신을 도와 상을 차리고
녀석을 찾으니
녀석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어쩌지 큰일이다 큰일다..이러고 있으니
어르신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면서 계속 소변 대변으로 온 자리를 표시해둔 녀석이면 어지간한 사람보다 똑똑할거다
그리고 길을 안내할 정도면 이 산길은 훤히 알고 있을테니 집으로 돌아갔을거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만약 발견하면 잘 데리고 있으마.."
어르신들께서는 참 멋진 분들이셨습니다
젊어서 열심히 사시고 하동호에서 평생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하동호가 생기기 전 200여가구가 모여 살 때 부터 이곳이 고향이었다고 하십니다
하동호가 생기며 모두 뿔뿔히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잊지 못하고 다시 집을 지어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4시간을 넘게 이야기를 나누다
기꺼이 침대방을 내주신 덕에
참..편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첫 버스를 타기 위하여 서두르니
날씨도 춥고 이른 시간이라고 미역국을 끓이셔서 먹이고
밤이며 콩이며 잔뜩 챙겨서 싸주십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그 정에 뭉클하더군요
요즘 참 보기힘든 일이었어요
돌아와
전화를 드리며 너무나 감사했고
어르신들의 그 마음에 행복한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인사를 드리니
언제든지 그곳에 오면 들르라며 따뜻한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 녀석을 생각하며
보통 녀석이 아닐거 같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찾아보니 위태마을
정돌이네 민박집 주인께서 함께 사냥도 나가고 아끼는 진돗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어쩐지 똘똘하고 씩씩하다 했어요
담에 그곳에 가면 그 녀석 꼭 안아주려고요..^^
그리고 어르신들께
인사 드리러 꼭 가야겠어요..^^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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